영월 청령포 뱃터에서 본 단종의 유배지...
시종들이 거처하던곳
주방(부엌)에서 주모가 요리하는 모습 재현.
이곳의 소나무는 단종대와이 왕위를 찬탈 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계셨던 어소를 향해 소나무사 엎드려 있다..
나중에 증조된 어소 (본래의모습아님)
선비가 단종을 알현하는 모습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중에 선비의 알현을 받는 모습.
침실.
유배당시 어소가 있던자리에 단묘재본부시유지비를 세우고 전각을 지었다.
영조39년(1763)에 이비를 세워 어소 위치를 전하고 있다.
담을 넘어 어소 위치로 향하고 있는 소나무...
소나무 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온것을 원통하여 읍소를 하고 있다고 한다.
관음송 ; 이소나무높이는 30m, 가슴높이늬 줄기 둘래가 5m 이며 , 지상1.2m 높이에서 두가지로 갈라졌고, 갈라진 두가지의 밑 둘래는 각각303m,와 2.95m 이다.
나무의 나이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왕조 제6대 임금 단종(1441~1457)이 유배생활을 할 때 이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어서 약 600년 정도로 추정 하고 있다. 이 소나무를 관음송이라 부르는것은 이 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보습을 보았다 하여 볼관(觀) 들었다하여 소리음(音)
자를 써 관음송이라 전한다.
망향탑 : 청령포 서쪽 절벽인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에 있는 돌탑으로 어린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 생활응 할 때 이곳에 올라 한양 땅을 그리며
쌓았다는 탑으로 그 당시 애절했던 단종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절벽인 육육봉에서 본 한양쪽 풍경
노산대.
밑으로는 깍아지른듯 절벽이다.
노산대 옆 소나무,
금표비 : 금표비(禁標碑)는 단종(端宗)께서 1457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 유배되어 계시던 이곳을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英祖)2년(1726)년 에 세운 비석이다.
뒷면에 동서 삼백척 남북 사백구십척 차후 니생역재당금숭정구십구년(東西三百尺 南北 四百九十尺 此後 泥生亦在當禁崇禎九十九年)이라 음각되어 있는데
이 뜻은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 숭정99년 이라는 내용으로, 당시 단종에게도
이와 같은 제약{制約)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주변 소나무..
소나무 숲이 우거져 안개낀날 다시와야 겠다는 생각을 품으며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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